5 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만 사과해.”

이주연도 한 성질 하지만 뭐든지 상대적이여 보인다고 불같은 친구를 둘이나 뒀더니 어쩐지 자신은 이만하면 그래도 불같진 않다고 이주연은 생각했다. 박인결은 애초에 말 할 생각이 없는 건지 과외 할 때 빼고는 아니 애초에 누가 말을 걸지만 않으면 아주 입에 풀칠한 거마냥 입을 닫고 있었다.

“근데 주연이랑은 어떻게?”

이 낯간지러운 상황을 어떻게든 탈피하고 싶은데 점심시간 바로 다음이 체육이라 어차피 운동장에 계속 있어야 했다. 게다가 점심시간은 밥을 일찍 먹은 탓에 아직도 30분 넘게 남아 있었다.

“그걸 꼭 알아야 해?”

“이주연 과외 선생.”

“너 되게 정 없게 얘기한다?”

괜히 빈정 상하게 거리를 넓힌다. 애초에 사적인 얘기는 하지 않는 주의시니 이 정도면 예상되는 답변이었다.

“그럼 불알친구.”

“에?”

진짜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간극이 크지 않냐고 하기엔 사실 여기 4명 합친 것보다 박인결과 어쨌든 알고 지낸지가 더 오래됐으니 말이다. 서혜인이 4년. 민기원, 김도원이 3년. 도합 10년인데 박인결과 햇수로만 따지면 17년이었다.

“아 선배님이셨군요.”

민기원이 너스레를 떠는 쪽이었다면 김도원은 애 자체가 능글맞은 편이었다. 갑자기 대뜸 손을 내밀며 인사하는 녀석에 박인결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굳었다가 얼마 시간이 지나서야 손을 맞잡았다.

“뭔 선배야. 얘랑 싸우고만 몇 년이지?”

“11년.”

“11년인가?”

“응.”

“잘 맞네.”

담백한 감상에 이주연은 무슨 소리냐며 짜증을 냈다. 얘랑 잘 맞긴 무슨 하나하나 따지면 아예 반대인 게 박인결이었다.

“근데 왜 지금까지 몰랐지?”

“그것도 그렇긴 하다. 알법한데.”

이주연은 잠시 말을 골랐다. 음 얘가 갑자기 해외로 튀어서 연락 두절 됐다고 그대로 말하긴 그렇고. 박인결 가정사를 이주연이 얘기하는 것도 웃겼다. 그나마 단둘이서만 공유하는 비밀 아닌 비밀이었으니. 

“미국에서 중학교 다니다가 왔어.”

“헐. 그럼 영어 잘하겠네?”

“그냥 보통 정도.”

같은 반 친구 세 명은 동시에 생각했다. 겸손도 적당해야지. 영어 생기부 채울 사람은 발표 준비하라는 말에 성실한 박인결은 마침 어제 발표를 끝냈었. 유창한 발음 하며 알맞은 문법 설명에 박수까지 치며 환호했던 영어 선생님이 생각났다.

“너 그럼 영어 열심히 공부한 게 박인결 때문이야?”

“…뭔 헛소리야.”

꾸준히 영어만큼은 열심히 해왔던 이유에 박인결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게 전부라고도 할 수 없었다. 사실 영어라면 진짜 싫었지만 정말 싫었지만, 일단은 그나마 성적이 괜찮게 나오고… 혹시 박인결이 전화해서 와달라고 했을 때 영어를 잘해야 할 지도 모르니까. 중학교 2학년 때는 포기 했지만, 관성처럼 공부하다 보니 지금이 된 거다. 이주연은 생각을 멈췄다.

“너 영어 싫어서 이과 선택했다며.”

“싫은 거랑 공부하는 거랑은 다르지.”

사실 영어를 싫어하게 된 것도 너무 하다 보니까 그런 것도 있지만.

“그러면 왜 돌아온 거야? 그것도 인문계를...”

뭐 이렇게 질문이 많은지 김도원의 입에서는 박인결을 호구조사하듯이 계속 질문을 해왔다. 박인결이 이 질문을 대답할지가 사실 더 궁금하기도 했다. 돌아온 이유도 궁금했지만, 이주연은 한 번 거절당한 전적이 있으니 대답 여부에 더 관심이 많았다.

“대답하기 싫은데. 안 해도 돼?”

“어? 어 뭐…”

세상 정중한 거절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 말 자체는 크게 다를 게 없는데 말투가 사근해서 그런지 정중하다고까지 느껴졌다. 언제는 사적인 얘기할 정도로 친하지 않다고 나한테 말했을 때는 목소리도 깔고 차갑게 대했으면서. 억울하다 억울해.

“김도원 너 안 가? 너 다음 이동이잖아.”

“아 맞다. 간다!”

김도원이 떠나고 나서야 말소리들을 줄어들었다. 간간이 서혜인와 민기원의 말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둘이서만 대화를 하는 듯 별다른 얘기는 없었다.

“박인결.”

“응.”

“나한테도 못 말해줘?”

그리 크지도 그렇다고 안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무시하기엔 뒤에 있는 두 녀석도 들을 목소리였다.

“말했잖아. 우리가 그 정도로 친하진 않다고.”

박인결은 미련 없다는 듯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구령대 위로 어슬렁거리며 걸어오는 체육 선생을 발견한 건 박인결이 운동장 끝으로 걸어갈 때쯤이었다.

“차였네.”

“응 차였어.”

이주연은 괜히 팔을 바둥거리며 성질을 냈다. 아, 내가 왜 저런 놈이랑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했지? 이주연은 이래놓고는 또 친해지겠다고 밥은 같이 먹을 자신이 그려짐에 더 우울함을 느꼈다.

“내가 자존심 안 세우게 생겼냐? 저렇게 나오는데?”

“뭐 우리 이주 입장도 이해가 가지만, 난 인결이 입장도 이해가 가는데?“

사람 이름 다정하게 부르는데다 도가 텄다. 이주연을 안은 민기원은 곱슬거리는 머리 위로 얼굴을 내리곤 다시 말을 이었다.

“인결이 딴에는 친해지면 말해줄 수 있다고 말한 거 아닌가? 말 안 한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긴 하네.”

서혜인도 동의는 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화법은 이상해.”

이주연은 서혜인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 더 친해지면 알려줄게라고 할 수도 있잖아? 

“너희 빨리 와라!”

저 멀리서 호루라기를 부는 체육 선생에 세 명은 느즈막이 몸을 일으켰다. 민기원은 점심시간의 소동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이주연을 뒤에서 안고 있었다.

“오늘은 50m 달리기 측정할 테니까 각자 몸 풀어.”

이주연은 슬슬 발목을 돌렸다. 저번 주 턱걸이를 평균치를 겨우 했기 때문에 그나마 체육 점수라도 잘 받으려면 달리기를 잘해야 한다. 허리 스트레칭도 하고 다리를 쭉쭉 펴고 있었더니 저 멀리서 선생이 이주연을 크게 부르고 있었다.

“왜요 쌤.”

“네가 적어.”

“체육부장 있잖아요!”

“그냥 해 어려운 것도 아닌데. 음료수 사줄게.”

늘 간식으로 환심을 사는 선생님이 나쁘지는 않아서 이주연은 묵묵히 빼놓은 의자에 앉았다. 

“근데 체육부장 놔두고 이주연이 써?”

“이주연 쟤 중학교 때까지 육상선수 했을걸? 단거리 달리기.”

체육부장이 한 말에 대기하고 있던 반 전체가 술렁거렸다. 서혜인이나 민기원은 경기가 있는 날이면 보러 간 덕에 몇 번 녀석이 뛰는 걸 본 기억이 있었다. 평소에는 귀엽기만 한 막내 같은 느낌이라면 달리기만 하면 사람이 바뀌는 것처럼 진지해져서는 목표 지점을 향해 죽일 것처럼 달려가는 게 이주연이었다.

“근데 왜 그만뒀대?“

누군가의 질문에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듯 아이들의 수다 사이로 사라졌다.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더이상 하기 싫고 재능의 벽을 느끼면 그만두는 거지 뭐. 이주연은 가볍게 생각했다. 마지막 경기에서 다리에 힘이 풀리는 바람이 경기장에서 넘어졌을 때도 자존심이 조금 긁혔을 뿐 경기에서 졌다고 분해하진 않았다. 운동선수를 하기엔 이주연은 승부욕이 적었다. 분해서 울고 있는 다른 실격자들이나 완주를 하지 못해서 탄식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주연은 깨달았던 것이다. 이 상정으로는 어차피 최고가 되지 못하겠구나. 차라리 일찍 그만둘 수 있었으니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박인결 7.02.”

애초에 마땅히 재능이랄 것도 아니었다. 남들보다 조금 빠르고 스타팅이 좋은 정도.

이주연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금 몸을 풀었다. 키에 비해서도 긴 다리를 풀었다. 발목을 돌리고 마지막 순서로 불린 이름에 이주연은 손을 들었다. 나도 뭔가를 계속할 수 있을까. 머리에 위에서 자리 잡지 못한 꿈이 혼자 날개를 달고 날아다닌다.

체육선생이 들고 있던 깃발을 내림과 동시에 튀어 나갔다. 숨을 참다시피 50m를 달린다. 내디뎠던 발로 땅을 밀듯이 최대한 큰 보폭으로 달려나간다.

“이주연 5.78.”

운동하지 않은 게 티가 났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기록보다는 조금 느린 기록이었지만 이주연은 아쉽지 않았다. 몸으로 배운 건 변하지 않는구나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5초대를 처음 본다는 애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몸이 아예 녹슬지는 않았다는 건 기뻐서 민기원을 안고 뛰었다. 몸이 가벼워서 거의 코알라마냥 달라붙었더니 민기원이 무겁다며 등을 퍽퍽 쳐댔다.

“이주. 쌤이 불러.”

이주연은 고개를 돌려서 자신을 부르는 선생에게 다가갔다. 이미 반 애들은 굴러 온 축구공에 정신이 팔려 운동장을 알아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주연아.”

“저 가서 축구하고 싶은데요.”

자신을 부른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이주연은 괜히 다른 데로 말을 돌렸다.

“정말 생각 없어? 재능이 아까워서 그래. 작년에는 이것보다도 빨랐잖아. 사실 이 정도면 훈련해서는 다시 돌아갈 수도 있고.”

이주연은 괜히 뒷머리를 긁적였다. 재능이라면 없는 쪽도 아니니까 이런 말 들었던 적도 자주 있었다. 적어도 진학을 체대 쪽으로 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냐는 말을 들었지만 한 번 체육하는 인간들 사이에 들어 있었던 입장으로 그 쪽으로 발을 디디고 싶지도 않았다. 주변에 친구 하나 만들기 힘든 그런 곳은 이젠 돈을 받으며 오라고 해도 사절이었다.

“정말 생각 없어요. 저 요즘 공부 열심히 하는데.”

“그건 들었지. 이주연 요즘 열심히 한다는 말이 교무실에 파다해.”

“그렇죠? 제가 요즘 매일 같이 야자도 남고 그렇잖아요. 박인결도 같이 하고. 뭐 그러니까 전 내년까지도 계속 공부할 거예요. 쌤.”

마지막이었다. 아마 선생님도 이 이후에는 더 말이 없을 거라 믿으며 이주연은 그만 축구하러 가도 되느냐고 물었다. 여전히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에 이주연은 애써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하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운동장으로 뛰었다.

“아이 깜짝아.”

은근히 덩치도 큰 놈이 코너에 딱 서 있는데도 눈치를 못 챘다니 새삼 둔해졌다고 생각하며 이주연은 박인결의 얼굴을 쳐다봤다. 여기 서 있으면 들렸을 텐데. 딱히 들으려고 한 건 아니겠지만, 이주연을 보는 시선이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너 왜 여기 있어?”

“기록지 드리려고.”

“아 네가 가지고 있었지. 수고해라.”

어차피 축구는 소질이 없어서 옆에서 구경만 하겠지만 굳이 이 자리에 단 둘이 오래 있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괜히 내 속을 다 들킬까 겁이 난다고나 해야 하나. 박인결이라면 내게 쓴소리를 할 수도 있을 거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지금은 이상한 생각이 들기 전에 도망치고 싶었다.

“이주연.”

박인결이 부른 이름에는 퍽 걱정이 서려 있었다. 이름이 많이 불리다 보면 저 사람이 나랑 싸우려고 부르는 건지 정말 걱정해서 이름을 부른 건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뭐 그렇게 각 잡고 불러. 말할 거면 빨리 얘기해. 나 다음 판 껴야 돼.”

괜히 발을 동동거리며 뒤를 보면서 얘기했다. 박인결의 입이 벌어지더니 이주연에게 물었다.

“달리기 왜 안 해?”

문제 질문이 아닌 처음으로 이주연에게 묻는 말이었다. 이주연은 질문을 들었다는 것에 놀라지 않았다. 사실 누구에게나 자주 들었던 질문이었다. 중학교 때 운동했다는 얘기를 하고 그 뒤에 이어지는 당연한 질문이었다. 개구지게 웃으며 넘길 수 있을 만큼 답하는 게 쉬운 질문이었는데, 문득 네게는 그러기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얘기할 정도로 우리가 친한가?”

쪼잔해 보일 수 있는 질문이 입 밖으로 튀어 나간 뒤였다. 박인결은 조금 놀란 것처럼 보였다. 나도 이런 말 하게 될 줄 몰랐어 인마.

“아니 뭐. 심각한 건 아니고. 아이씨. 그냥 말하기 좀 그래서 그래. 듣는 귀도 있고. 넌 왜 또 처음 묻는다는 게 하필 그거야.”

이주연은 민망하다는 듯이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나중에 얘기한다고 말하면 될 텐데. 오늘따라 재수가 영 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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